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린든 B. 존슨 (문단 편집) == 기타 == [[파일:external/1ab49ef82609bf5dfd22c2debde4f36aaefbb9cee3985f95cb7ab980eea439fe.jpg]] 애견 '유키(Yuki)'와 함께. 그는 이렇게 개 울음소리를 흉내내는 장난을 많이 쳤다고 한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에이브러햄 링컨]]의 뒤를 이어 2번째의 장신('''192cm''')이다. [[도널드 트럼프]]와 함께 공동 2등이다. 이니셜 '''LBJ'''를 자칭, 타칭으로 많이 쓴 대통령이다. 비슷한 사례로는 [[JFK]](존 F. 케네디), [[FDR]](프랭클린 D. 루스벨트), TR(시어도어 루스벨트) 등이 있다. 부인 클로디아 앨타 테일러는 원래 애칭이 레이디 버드(Lady Bird)인데, 아예 이 애칭을 정식 이름처럼 내세웠고, 이니셜까지 LBJ가 되었다. 그리고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두 딸의 이름도 린다 버드, 루시 베인스로 지어 딸들의 이니셜까지 LBJ로 맞췄다. [[파일:ZBZ9Egz.jpg]] 일명 The Johnson treatment로 유명했다. 존슨 자신이 원하는 법을 빨리 통과시키기 위해서 상원의원들을 설득시키는 방식으로 상원 원내 대표이던 시절부터 자주 써먹었다. 쉽게 말해 권모술수의 달인. 존슨은 자신이 알고 있는 현직 상원의원들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수집한 다음, 좋은 풍채와 직위에서 나오는 위엄, 언변과 융합시켜 공갈, 호소, 협박, 읍소 등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상원의원들이 그의 제안을 도저히 버틸 수가 없게 만들어버렸다. 위 사진은 Johnson Treatment를 당하고 있는 시어도어 그린 상원의원. 두 사람 모두 표정과 몸짓이 압권이다. 쉬지 않고 하루에 '''18~20시간'''씩이나 일하는 [[워커홀릭]]이었다고 한다. [[파일:attachment/lbj_tm.jpg]] 1967년 6월 13일 백악관에서. 좌측 인물은 훗날 [[연방대법원|미국 최초의 흑인 연방대법관]]이 되는 [[서굿 마셜]](Thurgood Marshall)이다.[* 1908~1993. 이 사람은 첫번째 흑인 법학자이기도 하다. 1967년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법관이 되어 20년 넘게 재임했다. [[볼티모어 워싱턴 국제공항]]에도 그의 이름이 붙었다. 볼티모어 워싱턴 국제공항의 정식 명칭은 Baltimore/Washington International Thurgood Marshall Airport, 즉 볼티모어-워싱턴 서굿 마샬 국제공항이다.] 존슨 대통령은 마셜에게 법무부 차관직을 제의했는데[* 당시 마셜은 미국 연방 항소 법원 판사.] 이상하게도 마셜은 존슨의 제안에 선뜻 답을 않고 차일피일 미루며 묵묵부답이었다. 위 사진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흑인'''이었기 때문. 뒤늦게 마셜의 의중을 눈치 챈 존슨은 그를 집무실로 불러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아시오? 법무차관 자리에 __검둥이__(Nigger)가 앉아있는 걸 사람들이 보면 뭔 낯짝을 하게 될지 궁금하단 말이오!"'''라고 질러 버렸다. '''즉, 흑백 차별 철폐의 일환으로 법무차관에 흑인인 마셜을 앉혀서 인종 차별주의 성향을 지닌 백인들의 속을 뒤집어버리려는 의도였던 것'''. 그렇게 존슨 대통령의 뜻대로 서굿 마셜은 1965년 8월부터 1967년 8월까지 법무부 차관으로 일하다가 연방 대법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심지어 존슨이 마셜을 대법관으로 임명하기 위해서 한 일이 걸작인데, 당시 대법관으로 있던 탐 클라크의 '''아들인 램지 클라크를 법무차관'''에 앉혀 버렸다. 즉 법무부와 대법원은 서로를 견제해야 하는 입장인지라 부자(父子)가 동시에 양쪽에서 재임할 수는 없는 노릇인걸 존슨이 노린건데, 결국 탐 클라크 대법관이 이해 관계를 이유로 사퇴하자 바로 마셜이 대법관으로 지명되었다. 사실 마셜과 존슨은 동갑내기에 사적으로도 매우 친한 사이였고, 마셜 이 양반도 존슨 못지 않게 한 성격해서 둘이 개인적으로 만난 자리에서는 여지없이 '''불타는 뒷담화'''가 오갔다고 한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만날 때마다 평소 자기네들이 안 좋게 보던 사람들을 거론하면서 '''"그 X새끼, X해버릴 새끼."''' 뭐 이런 식의 수다를 떨었다고.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주간지)|TIME]]지에서 '''역대 [[미국 대통령]]중 최고의 [[욕쟁이]]'''로 뽑은 인물이기도 하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1964년 [[그리스 왕국]]의 [[키프로스]] 침공 때 주미 그리스 대사를 백악관으로 불렀는데, 그리스 대사가 앉자마자 "당신네 나라(그리스)는 벼룩이야. 미국은 코끼리고. 코끼리가 벼룩 한 마리 밟아뭉개는 건 식은 죽 먹기라구."라는 폭언을 내뱉었다. 그리스 대사가 헌법을 거론하며 그리스의 침공을 변명하려 하자 존슨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당신네 의회랑 헌법 따위 X까라 그러지. 미국은 코끼리야. 키프로스는 벼룩이지. (근데,) 그리스도 벼룩이야. 만약 벼룩 둘이 계속 코끼리를 가렵게 한다면, 한 방 제대로 쳐맞을 거요."[br]Fuck your parliament and your constitution. America is an elephant. Cyprus is a flea. Greece is a flea. If these two fleas continue itching the elephant, they may just get whacked good. 이 폭언에 뒤이은 경고도 걸작이다. >"우리는 그리스인들에게 많은 [[미국 달러|달러]]를 제공하고 있소, 대사. 만약 당신네 총리가 나한테 민주주의, 의회하고 헌법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당신네 총리, 의회와 헌법은 아마 오래가지 못할거요."'''[br]We pay a lot of good American dollars to the Greeks, Mr. Ambassador. If your Prime Minister gives me talk about democracy, parliament and constitution, he, his parliament and his constitution may not last long. 이 살벌한 경고에 식은 땀만 실컷 빼고 온 그리스 대사는 본국에 급전을 쳤고 미국의 확고한 의지를 알아챈 그리스 정부는 키프로스에서 철군 명령을 내렸다. 흔히 텍사스 부자(富者) 대통령으로 [[조지 부시]] 부자(父子)를 들고, 존슨은 텍사스 농촌 스타일의 서민 이미지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존슨은 부시 부자보다 재산이 훨씬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그는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재산순위 상위권에 든다. 현재 물가 기준으로 7번째로 재산이 많았던 [[미국 대통령]]이라고 한다.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presidents_of_the_United_States_by_net_worth|#]] 인플레이션을 반영할 경우 부시 부자의 재산을 합친 것보다 많은 것. 그의 집안은 텍사스 곳곳에 여러 사업에 투자하며 한때 어려운 상황에 처하기도 했고, 그도 젊은 시절 학비를 아껴가며 대학에 다닌 적도 있기는 하나, 이후 다시 사업이 번창하여 많은 재산을 모았고, 부인도 사업에 재능을 보였다. 조지 W. 부시가 대통령 재임 중 텍사스의 [[크고 아름다운]] 농장 때문에 자주 까였지만, 사실 존슨의 텍사스 농장 역시 그에 못지 않게 컸고, 존슨도 틈만 나면 백악관을 떠나 농장에 머물고는 했다. 존슨의 텍사스 농장에는 그의 묘지가 있으며, 가족들은 국가에 토지를 일부분 기증하여 국립 역사 유적지로 등록되어 있다. 수륙양용 자동차를 갖고 있었는데, 텍사스 존슨 시티에 있는 자기 집에 온 손님을 차에 태우고 드라이빙을 즐기다가 언덕길을 내려가며 '''갑자기 브레이크가 고장난 척 하고 비명을 지르며 호수에 그대로 들어가버리는 취미'''가 있었다고 한다. 존슨 재임기간 영국의 [[윈스턴 처칠]]이 사망해서 조문사절을 보내야 했는데, 당시 영국 주재 미국 대사에게 사절 역할을 맡겨 상대적으로 급이 낮다며 눈칫밥을 먹기도 했다. 이때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이 '''개인 자격'''으로 장례식에 참석을 했기에 존슨 본인이 정 가기 싫었으면 그냥 처음부터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대리인 및 미국 대표를 맡기거나 당시 부통령이었던 [[허버트 험프리]]를 조문 사절 대표로 보내면 아무 문제 없이 간단히 해결되는 문제였지만[* 거기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처칠은 연합국의 지도자, 아이젠하워는 연합군의 총사령관이었으니, 참전 용사가 옛 전우의 장례식에 참석했다는 상징성까지 있었다.] 굳이 그렇게 안해 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미국 대통령 쯤 되는 사람이 이런 간단한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는데, 왜 존슨이 굳이 이런 악수를 뒀는지는 정확한 이유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존슨은 아이젠하워 이래 [[엘리자베스 2세]]를 만나지 않은 유일한 미국 대통령이기도 하다. 사실 여기엔 존슨도 케네디의 암살과 베트남 전쟁을 수습하느라 바쁘고, 엘리자베스 2세 역시 임신 문제로 인해 순방이 곤란했던 측면도 있었다. 한번은 기자가 베트남전 관련해서 날선 질문을 하자, 빡친 나머지 바지를 내리며 '''"이거 보이시오? 훌륭한 텍사스산 거시기라구. 이거 괴롭히지 마시오."'''라는 말을 뱉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성기는 [[점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고 한다. 관계자들은 그가 "핵무기를 언제든 사용할 만한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을 소련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조울증을 앓고 있는 그가 돌발적으로 한 행동이다" 등 온갖 추측을 내놨으나 결국 그가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라고 한다. [[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category=mbn00007&news_seq_no=3190666|관련 기사]]. 또 그는 이 '점보'를 자랑스러워 했는데, 일화로 그는 백악관 화장실을 사용할 때 항상 문을 열어놓고 볼 일을 봤다고 한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비서관에게 보고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여행 시에 수십병의 [[커티 삭]] 위스키와 함께 특수 샤워기 노즐을 가지고 다닐 정도로 샤워기에 집착하기도 했다. 부통령 시절에 머무른 저택의 샤워실이 훨씬 나았다고 타박을 해대서 백악관 담당자가 신경쇠약에 걸려서 휴직을 했을 정도라고. 소방차 호스 정도의 수압에다가 한번 스위치를 누르면 물 온도가 뜨거움에서 차가움으로 확 바뀌기를 원하는 바람에 결국 수만 달러를 들여 백악관에 추가 배관과 펌프를 설치해야 했고, 6개의 샤워기 노즐에서 분 당 수백 갤런의 물이 쏟아지게 해서 몸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벽으로 밀릴 정도인걸 앞에 전기 엔지니어를 세워놓고 직접 확인하고 나서야 만족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노즐 중 하나는 LBJ의 '점보'로 직사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고생하면서 설치한 샤워기는 그가 퇴임한 후에 철거되었다. 닉슨이 싫어했다는 모양이다. [[존 에드거 후버]]를 [[FBI]] 국장 자리에서 경질하려다가 취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후버가 텐트 '''밖에서 안으로''' 오줌 싸는 것보다야 '''안에서 밖으로''' 싸게 하는 게 낫겠지." >"It's probably better to have him '''inside the tent pissing out''', than '''outside the tent pissing in'''." 미국을 방문한 독일의 [[에르하르트]] 총리가 "대통령께서는 통나무집에서 태어나셨다지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존슨은 "저랑 [[에이브러햄 링컨]]을 혼동하셨군요. 저는 [[예수]]처럼 말구유에서 태어났습니다."라고 받아쳤다고 한다. 대통령 퇴임 후 교통 속도 위반으로 [[경찰]]에 적발된 적이 있었는데, 경찰이 전직 대통령인 존슨을 알아보고 놀라서 "Oh, my god!"이라고 외치자 존슨은 바로, "내가 신인 걸 잊지 마시오."라고 받아넘겼다고 한다. 그리고 과연 꿈은 이루어졌는지, 원시부족의 섬에서 신격화되고 왕 노릇을 해달라고 요청받기도 했다. 사실 진지한 신앙은 아니고 정치 운동에 가까웠다. 자세한 것은 [[화물 신앙]] 문서 참고. 훗날 대통령이 되는 [[제럴드 포드]]에 대해선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유일하게 껌 씹는 것과 방귀 끼는 것을 동시에 못하는 사람이지."라고 평했는데, 쉽게 말해 "포드, 참 덜 떨어진 친구야."라는 뜻이다. 노골적으로 내뱉는 걸 좋아한 존슨의 농담 치고는 신사적인 표현이다.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전임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암살 배후에 존슨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케네디의 암살로 제일 이익을 본 인물이고 당내 경선에서 케네디에게 패해 이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는 것, 고향 텍사스의 군수 재벌, 석유 재벌들의 협력으로 정계에 입문한 인물이었으며 그 당시 케네디와 존슨이 갈등을 겪고 있었다는 점 등이 주된 이유로 꼽힌다. 허나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없기 때문에 그냥 말 그대로 음모론일 뿐이다. 존슨 본인은 케네디의 암살 배후를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로 지목했다. 또 [[리처드 닉슨]] 항목에서 보듯 닉슨 배후설도 만만찮다. [[텍사스 주]] [[휴스턴]]의 NASA 본부는 린든 B. 존슨 우주센터로 이름지어졌다. 발사장은 [[플로리다 주]] [[케이프 커내버럴]]의 [[존 F. 케네디]] 우주센터. 댈러스 지역을 반쯤 순환하는 I-635 또한 LBJ Freeway라고 명명되어 있다. 그 유명한 [[SR-71]] 블랙버드 정찰기의 이름을 지금처럼 SR-71로 만든 대통령이기도 하다. >원래 제식 명칭은 SR이 아닌 RS-71이었으며 "정찰 및 타격(Recon & Strike)"의 약자였지만 RS-71이라는 명칭을 당시 미국 대통령인 린든 B. 존슨이 실수로 SR-71로 읽은 바람에 대통령이 실수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며 공군이 관련 서류에 있던 기종 명칭을 모두 SR-71로 뜯어고치는 삽질을 해서 결국 제식명칭이 SR-71이 되었다. 나중에 전략정찰기(Strategic Reconnaissance)라는 말이 나와서 나름 그럴듯해 보이긴 했다. 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최근까지 알려져 있던 내용인데, 틀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이게 100% LBJ의 삽질인 것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닌게, '''나중에 확인해 보니 [[커티스 르메이]] 공군참모총장이 존슨 대통령 몰래 백악관 보좌관에게 압력을 넣어 자신이 원하는 전략정찰기(Strategic Reconnaissance)라는 이름으로 바꾸기 위해 대통령이 읽을 원고에서 RS를 SR로 바꾸게 했다고 한다.'''[* <월간 항공> 2009년 11월호 기사 참고 바람. 존슨 대통령의 공개는 당시 극비였던 CIA가 운용하던 SR-71의 1인승 원형기인 A-12를 가리기 위한 일종의 연막이었다고 한다.] 미국 대통령들 중 성씨가 겹치는 대통령들끼리는 거의 가족 혹은 가까운 친척 정도였지만, 이 사람과 앤드루 존슨은 100년의 차이가 있으며, 생판 남으로 겹친 사례이다. [[우드로 윌슨]] 이후 50년만에 나온 전임자보다 연장자인 대통령이다.[* 다만 이 사람은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전임자의 암살]]로 승계받았기 때문에 전임자가 만기퇴임하고 나서 연장자인 후임 대통령이 나온 경우는 [[지미 카터]]보다 13살 더 많은 [[로널드 레이건]]때 68년만에 나온 것이다.] 참고로 29대 [[워런 G. 하딩]]부터 34대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까지는 순서대로 태어났다.[* 하딩 1865년, [[캘빈 쿨리지|쿨리지]] 1872년, [[허버트 후버|후버]] 1874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FDR]] 1882년, [[해리 S. 트루먼|트루먼]] 1884년, 아이젠하워 1890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